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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독학

기타 독학 다섯 번째 이야기 – 왼손의 세계, 누르는 것이 아닌 만지는 것

by 먀리 2025. 5. 29.

기타 독학 다섯 번째 이야기. 코드를 ‘누르는’ 손이 아닌 ‘만지는’ 손으로 바꾸며 울림을 찾아가는 여정. 왼손의 섬세한 감각과 터치, 그리고 기타와의 호흡 속에서 발견한 음악의 본질을 감성적으로 풀어낸 에세이.

기타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왼손이 ‘코드를 누르는 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힘을 줘서, 줄을 확실히 눌러야 좋은 소리가 난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른 연주자들의 손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그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좋은 연주는 힘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힘을 얼마나 빼느냐’에서 진짜 음악이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 C 코드를 연습하던 때를 기억한다. 손가락 끝이 저리고, 줄은 소리를 내지 않았고, 넷째 손가락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마치 바위를 움켜쥐듯 기타를 붙잡고 있었다. 그저 ‘버티는 연습’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손가락에 힘을 뺐을 때, 이전보다 맑고 선명한 울림이 났다. 그 순간, 나는 누르기보다는 ‘만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처음 실감했다.

그 이후로 왼손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기타를 ‘잡는다’가 아니라 ‘어루만진다’는 마음으로 코드를 눌렀다. 손가락 끝이 닿는 면적, 줄과 지판 사이의 각도, 아주 미세한 움직임들이 소리를 바꾸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Bm 코드처럼 어려운 바레 코드는, 손목의 위치와 팔꿈치 각도, 어깨의 긴장까지 전부 연결되어 있었다. 결국, 왼손은 몸 전체와 함께 연주하는 손이었다.

한참을 독학으로 연습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느낌’을 믿게 된 것이다. 악보에 쓰여 있는 대로 손가락을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끝에서 느껴지는 압력과 줄의 반응을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게 더 오래가는 기술이었다. 예전엔 “이건 이렇게 잡아야 한다”고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이렇게 잡으니까 이런 느낌이 난다”로 바뀌었다. 이 작은 차이가 연주의 깊이를 만들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겨울밤, 방 안이 조용해질 무렵, 기타를 들고 아무 곡이나 흥얼거리며 코드를 짚었다. 특별한 곡도 아니었고, 연습도 아닌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왼손이 줄 위를 자연스럽게 타고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손가락은 줄을 눌렀지만, 마치 서로 인사하듯 가볍게 스치며 소리를 냈다. 그 감촉은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하다. 기타와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인사’를 나눈 순간이었다.

독학은 이런 감각의 발견이 반복되는 과정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직접 해보고, 실패하고, 우연히 얻은 순간에 그 무엇보다 큰 배움을 얻는다. 왼손도 마찬가지다. 단단하게 쥐는 법을 배우기보다는, 부드럽게 감싸는 법을 배운다. 기타가 ‘덜 저항할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것을, 몸이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코드를 짚을 때, 손끝의 감촉에 먼저 집중한다. 줄이 울기 좋은 위치는 어디일까? 이 손가락은 너무 깊이 누르고 있진 않을까? 무리하게 펴진 손가락은 없는가? 이렇게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기타와의 호흡을 맞춰간다. 그렇게 만져진 코드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는, 단순히 맞는 소리 이상이다. 그것은 ‘진심이 담긴 터치’가 낸 소리다.

다음 글에서는 ‘멜로디를 따라가는 핑거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작곡가처럼 움직이는 순간들, 그리고 그 섬세한 연주 속에서 드러나는 기타 독학자의 또 다른 언어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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